냄새가 사라진다는 건 단순한 불편일까?
하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내렸다. 분명 물의 온도도 맞았고, 원두도 갓 간 것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커피 향이 느껴지지 않는다. 감기일까 싶었지만 코는 막히지 않았고, 맛도 밋밋했다. ‘그냥 피곤한가?’ 하며 넘겼지만 이런 현상이 반복된다면 단순한 감각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후각감퇴(hyposmia) 또는 무후각증(anosmia)은 뇌에서 일어나는 더 깊은 문제의 초기 신호일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후각 상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증상이 되었다. 하지만 팬데믹 이전부터, 의학계에서는 후각의 상실이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의 조기 지표라는 점에 주목해왔다. 후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뇌와 밀접한 감각이며, 그 감퇴는 뇌 속 변화의 시작을 암시할 수 있다. 지금 맡지 못하는 냄새가, 내 뇌가 보내는 가장 첫 번째 구조 신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후각은 왜 ‘가장 빠르게 망가지는’ 감각인가
후각은 시각, 청각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감각처럼 보인다. 그러나 해부생리학적으로 보면 후각은 뇌와 직접 연결된 유일한 감각이다. 후각신경(olfactory nerve, 제1 뇌신경)은 코 점막의 후각 수용체에서 발생한 신호를 중계 뉴런 없이 곧장 대뇌 피질의 후각겉질(primary olfactory cortex)로 전달한다. 이 구조는 정보 처리 속도를 빠르게 하지만 동시에 취약성을 높인다. 외부로 노출된 점막에서부터 뇌로 직결되는 경로이기 때문이다.
또한 후각세포는 끊임없이 교체되는 드문 신경세포 중 하나다. 약 3060일마다 후각 수용체 세포가 신생되는데, 이 과정은 나이가 들수록 효율이 떨어진다. 따라서 노화가 진행되면서 후각 기능은 점차 감소하고, 60대 이후에는 인지기능과 비례해 후각 감퇴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일부 연구에서는 정상 노화 과정에서도 전체 인구의 2530%가 경미한 후각 손상을 경험한다고 보고한다 (Doty, 2012).
이처럼 후각은 뇌의 신경 회로 상태를 비교적 민감하게 반영하는 센서 역할을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감각의 변화를 '나이 탓' 혹은 '일시적인 문제'로 여기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각이 망가지기 시작했다면, 그보다 더 깊은 곳의 신경이 이미 퇴화 중일 수 있다”라고 의학계는 말한다.
후각 감퇴와 신경퇴행성 질환의 관계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루이소체 치매 등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에서는 공통적으로 후각 기능의 감소가 질병의 초기 단계에서 나타나는 전조 증상으로 보고된다. 이 현상은 단순한 감각의 문제라기보다, 신경계에서의 병리적 변화가 가장 먼저 반영되는 민감한 생리적 현상으로 해석된다. Porth의 ‘Essentials of Pathophysiology’ (4th ed.)에 따르면, 후각 기능은 시냅스 전달의 변화, 뉴런의 소실, 그리고 특정 단백질의 병적 축적으로 인해 초기에 손상받기 쉽다고 명시되어 있다.
파킨슨병의 경우, 후각 상실은 도파민 신경세포의 소실보다 먼저 나타난다. 병태생리적으로 파킨슨병은 흑질(substantia nigra)에서 도파민 분비 뉴런의 점진적인 파괴로 정의되지만, 레비 소체(Lewy bodies)라 불리는 병리적 단백질(α-synuclein)의 축적은 후각구(olfactory bulb)와 후각겉질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다. 이러한 점은 Braak 단계(Braak staging)라는 파킨슨병의 병리 진행 이론에서도 강조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질병은 후각구와 미주신경핵에서 시작해 중뇌로 확산되며, 따라서 냄새 감지 능력의 변화가 운동증상보다 4~6년 앞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된다 (Braak et al., 2003).
알츠하이머병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보인다. 아밀로이드-β(amyloid-β)와 과인산화 타우 단백질(hyperphosphorylated tau)은 후각겉질(primary olfactory cortex)과 연합겉질(orbitofrontal cortex), 해마(hippocampus) 등 기억과 감각을 처리하는 부위에서 먼저 축적된다. Guyton and Hall의 ‘Textbook of Medical Physiology’ (14th ed.)에 따르면, 이들 부위의 초기 병변은 후각기능의 감소와 명확한 상관관계를 보이며, 특히 냄새 구별 능력(odor discrimination)이 가장 먼저 저하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치매 환자들은 냄새의 유무는 인지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구별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특성을 보인다.
더 나아가, 이러한 후각 기능 저하가 단지 동반 증상이 아닌 질병 예측 인자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도 연구되고 있다. 대표적인 장기 추적 연구인 Rush Memory and Aging Project (ROSMAP)에서는 후각 저하가 있는 노인군이 향후 5년 내 치매로 발전할 확률이 2~4배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이는 인지기능 검사보다 예측력이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Wilson et al., 2009).
이처럼 후각 감퇴는 신경퇴행성 질환의 병태생리적 메커니즘 속에서 가장 먼저 침범되는 뇌 부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증상이기 때문에, 향후 조기 진단 및 중재 타이밍 설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후각의 손상은 더 이상 단순한 감각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뇌 신경망의 점진적 붕괴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분자 생물학적 신호이며, 간과해서는 안 될 경고음이다.
후각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 것 – 일상에서의 신호 감지와 예방
다행히도 후각 감퇴는 초기에 감지하면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첫 단계는 냄새에 대한 인식의 민감도를 스스로 체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 좋아하던 향수나 커피 향, 음식 냄새에 무뎌졌다면 감각적 변화일 수 있다. 또한 후각은 미각과 밀접하게 연결되므로, 음식 맛이 덜 느껴지는 것도 경고 신호다.
진단을 위해 병원에서는 UPSIT(University of Pennsylvania Smell Identification Test) 같은 후각 기능 검사를 통해 신경계 평가를 병행할 수 있다. 단순한 후각 감퇴인지, 혹은 신경계 이상과 연결된 감퇴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가족력상 치매나 파킨슨병이 있다면 후각 저하는 더욱 예민하게 살펴야 할 단서다.
예방 측면에서는 항산화 식이, 적절한 운동, 코 점막 건강 유지와 함께 후각 자극 훈련(olfactory training)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는 특정 향(예: 장미, 유칼립투스, 레몬, 정향 등)을 하루 2회 이상 맡으며 후각 회복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일부 임상에서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통한 회복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후각을 단순한 '냄새 맡는 감각'이 아니라, 뇌 건강을 예측하는 정밀 센서로 인식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세상이 무향으로 느껴진다면, 단지 커피 향을 놓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뇌가 보내는 조용한 SOS일 수 있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마라.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물만 마셔도 붓는가? (0) | 2025.07.16 |
---|---|
건강한 간식을 먹어도 살이 찌는 이유 (0) | 2025.07.15 |
건강검진 수치의 함정 (0) | 2025.07.14 |
수면 무호흡증, 단순 코골이가 아니다 (0) | 2025.07.13 |
건강기능식품, 언제 복용해야 효과적인가? (0) | 2025.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