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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냄새를 통해 진단한다 – 체취로 알아보는 건강 이상 신호

체취와 질병: 과학적 접근의 시작

 인류는 고대부터 체취를 통해 건강 상태를 추측해 왔습니다. 현대 과학은 VOCs(휘발성 유기화합물, Volatile Organic Compounds) 분석을 통해 체취가 내분비, 대사, 감염, 신경계 이상 등의 생리적 변화를 반영함을 밝혀냈습니다. 예컨대 당뇨병성 케톤산증은 달콤하고 아세톤 같은 입냄새를 유발하며, 간·신장 기능 이상은 암모니아성 냄새, 소화기계 질환은 썩은 달걀 냄새 등 고유의 체취 패턴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VOCs는 대기 중에 미량 존재하지만 민감한 분석법을 통해 정밀하게 검출할 수 있으며,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기체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Gas Chromatography–Mass Spectrometry, GC-MS)입니다.

 GC-MS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의 분리(크로마토그래피)와 정성·정량 분석(질량분석기) 기능을 통합한 고감도 분석 기법으로, 생물학적 시료(호흡, 땀, 귀지 등)에 포함된 수백 가지 VOC 성분을 각각 분리한 뒤, 그 분자량과 구조를 분석해 질병 특이적인 패턴을 식별합니다. GC는 혼합된 성분들을 칼럼 내에서 휘발성·극성·분자량 등의 차이에 따라 분리하고, MS는 이를 이온화시켜 질량 대 전하비(m/z)를 측정하여 각 성분을 식별합니다. 이 분석법은 VOCs의 정밀도와 신뢰도가 매우 높아, 체취 기반 질병 진단 연구의 골든 스탠다드로 자리 잡고 있으며, 폐암, 간질환, 감염병, 파킨슨병 등의 진단을 위한 바이오마커 개발에도 핵심적으로 활용됩니다.


호흡·땀·귀지 통한 진단 연구 사례

인체에서 방출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은 각기 다른 생체 시료를 통해 배출되며, 각 시료는 특정 질환에 대한 유의미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호흡, 땀, 귀지는 체내 대사산물의 변화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대표적 비침습 생체지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체취 기반 정보를 활용하여 다양한 질환을 조기 진단하려는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1. 호흡 분석 – 폐암, 당뇨, 간기능 장애 진단

 가장 대표적인 VOC 분석 시료는 호기(breath)입니다. 폐를 통해 배출되는 VOC는 폐암,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간성뇌증, 당뇨병 등 다양한 질환의 생리적 대사 이상을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폐암 환자의 호흡에서는 알케인(alkanes), 벤젠류, 메틸하이드로퀴논과 같은 발암성 또는 산화 스트레스 유래 화합물이 농도 증가 형태로 검출됩니다. Bajtarevic 등(2009)의 연구에 따르면,   GC-MS 기반 호기 분석만으로 폐암 환자와 건강인을 90% 이상의 정확도로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당뇨병성 케톤산증 환자는 혈중 케톤체 상승으로 인해 호흡에서 아세톤 농도가 높게 나타나며, 해당 패턴은 질환의 급성 진행 여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지표가 됩니다. 또한, 간 기능 저하 시 호기에서 디메틸설파이드(dimethyl sulfide)가 증가하며, 이는 간성 뇌증의 조기 예측 바이오마커로 활용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2. 땀 VOC 분석 – 감염·염증·암 조기 인식

 땀은 피부 표면에 직접 분비되어 외부에서 채취하기 용이하며, 전신 대사의 산물들이 반영되어 질환 진단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감염 및 염증 상태에서 땀 냄새가 민감하게 변화하며, 그 성분 또한 특징적으로 바뀝니다. Olsson et al.(2014)의 연구에 따르면, 실험 참가자에게 LPS(지질다당류, 염증 유도물질)를 주사한 뒤 수집한 겨드랑이 땀은, 염증 반응이 없는 사람의 땀보다 불쾌한 냄새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땀 속 헥세날(hexanal), 노난알(nonanal), 디카르복실산류의 증가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또한, 유방암 환자의 땀 VOC 패턴을 AI 분석한 연구에서는, 특정 알데하이드·케톤류의 농도가 건강군과 뚜렷하게 달라 구분 가능성이 입증되었습니다. 이처럼 땀은 감염·염증뿐 아니라 암, 자율신경계 질환, 스트레스 반응 등을 반영할 수 있는 체취 진단 자원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3. 귀지의 VOC – 파킨슨병 조기 진단 가능성

 상대적으로 연구가 드문 분야였던 귀지(earwax)에서도 최근 주목할 만한 성과가 나왔습니다. 2025년 중국 푸단대학교와 캐나다 맥길대 공동연구진은, 파킨슨병 환자의 귀지에서 건강군과는 확연히 다른 VOC 패턴을 관찰했습니다. 특히 에틸벤젠, 헵타날, 톨루엔, 펜타날 등 특정 방향족 화합물이 높은 비율로 검출되었으며, 전자코 기반 분류 알고리즘을 통해 진단 민감도 92%, 특이도 94%라는 높은 정확도를 달성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귀지가 단순한 노폐물이 아닌, 지방산, 콜레스테롤, 세포 대사 산물을 저장하는 반영구적 생체시료라는 점에서, 향후 만성질환의 조기 진단 및 경과 추적에도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감각적 평가와 e‑nose 도구의 혁신

흔히 체취는 주관적 인상으로 판단되지만, 전자코는 복합 VOC 패턴을 인식해 질환 여부를 자동 분류합니다. 팔 연구에서는 겨드랑이 VOCs로 개인 식별은 물론 탈취제 사용 전후를 구분해 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맹장 · 호흡기 감염 등 급성 질환 환자의 체취는 일반인보다 덜 쾌적하며, 이는 VOC 성분의 질적 변화 때문임을 확인한 연구도 있습니다.
체취 기반 조기 진단은 실시간, 비침습, 개인화 의료를 지향합니다. AI‑기반 e‑nose와 VOC 스펙트럼 데이터베이스는 질환별 체취 fingerprint 개발에 기여합니다.


임상·사회적 적용 및 향후 과제

 체취 진단은 조기 질병 발견 및 건강 모니터링에 혁명적 도구로 주목받습니다. 호흡기 질환, 당뇨, 신경퇴행성질병, 감염병 등에서 e‑nose 기반 검사는 비용·시간 절감, 비침습성, 현장적용성을 장점으로 합니다.
 하지만 한계도 존재합니다. VOCs는 개인차·식이·약물·환경 영향이 크며, 현재 장비는 표준화, 감도·특이도 향상, 다변수 해석 알고리즘 개발이 필요합니다. 미래에는 모바일 e‑nose 기기, AI 분석 플랫폼, 원격 건강 체크 시스템 연동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