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강

단식은 면역력을 높일까 낮출까? – 오토파지와 면역세포 재생의 과학

면역력을 높인다는 단식, 정말일까?

 

“요즘 간헐적 단식하면 면역력이 좋아진대.”

 


 이 말,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유튜브나 SNS에서는 ‘16:8 단식’, ‘24시간 공복’ 등 다양한 방식의 단식이 체중 감량은 물론, 면역력 강화까지 돕는다고 소개된다. 특히 ‘공복이 몸을 스스로 치유한다’는 주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들린다. 실제로 몇몇 단식 옹호자들은 감기나 바이러스 감염을 덜 겪는다고 이야기하며, 단식이 면역 시스템을 조절하고 노화를 지연시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다.
 단식은 정말로 면역세포를 활성화하고, 몸의 방어 체계를 강화하는 걸까? 아니면 오히려 영양 결핍과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 기능을 저하시킬 수도 있을까?
 이 의문은 단순히 생활습관의 차원이 아니라, 세포 수준에서의 면역학적, 병태생리학적 논의로 연결된다. 핵심 키워드는 바로 오토파지(autophagy), 즉 ‘자가포식 작용’이다. 이 과정은 세포가 손상된 부분을 분해하고 재활용함으로써 세포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때로는 면역세포의 생존과 기능 재조정에도 관여한다. 단식이 실제로 오토파지 활성화를 통해 면역 기능을 향상하는지, 혹은 일정 조건에서는 면역 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도 있는지를 병태생리적 근거와 최신 연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단식과 오토파지: 세포 내 ‘청소 시스템’의 가동

 오토파지란 세포가 스스로 손상된 기관이나 불필요한 단백질을 리소좀(lysosome)을 통해 분해하고, 이를 에너지원으로 재활용하는 생리적 현상이다. 이 메커니즘은 세포의 항상성(homeostasis)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며, 특히 영양 결핍 상태에서 활발하게 유도된다. 단식은 바로 이러한 오토파지를 유도하는 주요한 생리학적 자극 중 하나다.

 오토파지의 면역적 기능은 놀라울 정도로 넓다. 선천면역(innate immunity) 측면에서는 병원체를 직접적으로 분해하거나 항원 처리를 통해 면역세포에 제시하는 과정에 관여하며, 후천면역(adaptive immunity) 에서는 T세포와 B세포의 성숙 및 활성화에도 영향을 준다. 특히 자가포식은 T세포의 기억세포 형성과 생존에 필수적인 기전으로 알려져 있다(Levine et al., 2011, Nature).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오스미 요시노리(Yoshinori Ohsumi)의 연구 이후, 오토파지에 대한 과학계의 관심은 급격히 높아졌다. 이 과정은 단순한 ‘청소’ 작용을 넘어서, 노화 지연, 항염작용, 종양 억제, 면역조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리적·병태생리적 기능을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단식은 AMPK(AMP-activated protein kinase) 경로를 자극하고, mTOR(mammalian target of rapamycin) 경로를 억제함으로써 오토파지를 유도한다. 이는 세포 내 에너지 균형을 조절하며 면역세포의 ‘리셋’과 같은 재조정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단, 오토파지가 항상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지나친 오토파지 활성은 오히려 세포 사멸을 유도할 수 있으며, 특히 고령자나 기저질환자의 경우 단식이 면역력 저하로 이어질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단식과 오토파지의 관계는 이중적인 양면성을 가지며, 항상 체내 환경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


면역세포 재생과 단식: 과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단식이 면역세포의 수나 기능을 실제로 향상한다는 주장은 단순한 민간요법 수준이 아니다.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발터 롱고(Valter Longo) 교수팀은 2014년 Cell Stem Cell에 발표한 연구에서, 3일 이상 단식이 조혈줄기세포(hematopoietic stem cell)를 활성화시켜 면역세포의 재생(regeneration) 을 유도한다고 밝혔다(Longo et al., 2014). 연구팀은 단식이 PKA(protein kinase A)와 IGF-1(Insulin-like Growth Factor 1) 신호 경로를 억제함으로써, 면역세포의 생존성을 높이고 노화된 면역세포를 제거하는 동시에 새로운 세포 생성을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마우스 실험에서는 단식군에서 자가포식 유도 후 NK세포(natural killer cell) 수가 증가하고, 감염 저항성이 향상되는 현상도 관찰되었다. 이는 단식이 일종의 ‘면역 시스템 리부팅’ 작용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반론도 존재한다. 지속적인 에너지 결핍 상태가 유지되면, 특히 단백질 섭취가 부족할 경우 면역글로불린(antibody) 생성이 감소하고, 보체 시스템(complement system)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 또한, T림프구의 증식은 충분한 에너지 공급 없이는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임상 현장에서 만성적인 단식 또는 급격한 체중 감량 이후 감염 위험이 증가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식의 기간, 빈도, 대상자 상태다. 간헐적 단식(intermittent fasting, IF)이나 시간제한 식사(time-restricted eating)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식으로 오토파지를 유도할 수 있으나, 장기 단식(long-term fasting) 은 임상적 리스크를 동반할 수 있다.


면역력 강화로서의 단식,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단식이 면역 기능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좋다” 혹은 “나쁘다”로 단정할 수 없다. 단식은 확실히 오토파지를 유도하고, 손상된 면역세포를 제거하며 새로운 세포 생성의 가능성을 연다. 특히 대사질환, 염증성 질환, 노화 관련 면역 저하를 겪는 경우, 단식은 긍정적인 생리적 자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단식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 반응을 유도하며, 코르티솔 증가염증성 사이토카인 일시적 상승 등의 병태생리 반응도 수반한다. 고령자, 당뇨병 환자, 갑상선 기능저하 환자 등에게는 단식이 면역 기능 저하, 근육 소실, 저혈당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특히 영양소 섭취가 제한된 상태에서 지속적인 단식이 반복되면, 체내의 면역 방어체계는 장기적으로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단식은 면역 기능 향상의 보조적 수단으로 접근되어야 하며, 개인의 대사 상태, 나이, 기저질환 유무를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시도는 오히려 면역 시스템을 해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단식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영양학적 상담기초 건강평가를 병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단식=면역력 강화’라는 단순한 등식은 위험하다.
 우리가 단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식욕 억제가 아니라, 몸의 치유 기전을 이해하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그 중심에는 오토파지가 있으며, 그 가능성과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건강관리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