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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심장이 스스로 박동하는 이유 – 동방결절의 전기생리학

심장은 왜 스스로 뛰는가? – 자동성의 과학

 사람의 심장은 뇌가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박동한다. 눈을 감고 있을 때도, 깊은 잠에 빠졌을 때도, 불안하거나 흥분했을 때도 심장은 멈추지 않는다. 이처럼 심장은 인체 내에서 고유의 리듬을 생성하는 특수한 근육이며, 이러한 특성은 ‘심장 자동성(automaticity)’이라 불린다. 그 중심에는 바로 동방결절(Sinoatrial Node, SA Node)이라는 조직이 있다.

 동방결절은 우심방 상단, 상대정맥이 연결되는 지점 근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전체 심장 리듬의 시작점이다. 이 작은 조직은 자체적으로 전기 자극을 생성하고, 심방과 심실로 심장 전도계(cardiac conduction system)를 따라 전달함으로써 심장 전체를 수축시킨다. 즉, 심장은 단순히 수축하는 근육이 아니라, 전기생리학적으로 정밀하게 조절되는 감응 시스템이다.

 일반적인 근육은 외부 신경자극 없이는 수축하지 않지만, 박동기 세포(pacemaker cells)를 포함한 동방결절 세포는 스스로 막전위를 변화시키며 주기적으로 탈분극 한다. 이 전기적 변화가 심장의 박동을 유도하고, 이는 곧 생명 유지의 핵심 리듬이 된다. 이러한 작동 메커니즘은 심장 생리학(cardiac physiology)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


동방결절 세포의 자동성 – 심장 내부 채널의 역할

 동방결절 세포가 자동성을 갖는 이유는, 바로 독특한 이온 통로인 펑니 채널(funny current channel), 또는 HCN 채널의 존재 때문이다. 이 채널은 일반적인 이온 채널과는 다르게, 세포 내 막전위가 음(-)의 상태일 때 활성화된다는 특성을 지닌다. 덕분에 세포는 자동으로 나트륨 이온(Na⁺)을 유입시켜 막전위를 서서히 상승시킨다.

이렇게 상승한 막전위는 일정한 임계점에 도달하면 L-type 칼슘 채널이 열리고, 이는 급격한 탈분극을 유도한다. 다시 말해, 동방결절 세포는 외부 신호 없이도 자체적으로 막전위를 높여 전기 신호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심장 박동이 일정한 리듬을 갖게 된다.

 이후에는 칼륨 이온(K⁺)이 세포 밖으로 빠져나오며 재분극(repolarization)이 일어나고, 막전위는 다시 낮아진다. 그러면 다시 펑니 채널이 열리면서 다음 사이클이 시작된다. 이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며, 동방결절은 매 분 수십 회의 박동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정상적인 상태에서 동방결절은 분당 약 60~100회의 자발적인 전기 신호를 생성한다.

 이 자동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율신경계(autonomic nervous system)에 의해 조절된다. 교감신경은 HCN 채널의 민감도를 높여 박동수를 증가시키고, 부교감신경은 이를 억제하여 박동수를 감소시킨다. 이처럼 동방결절은 정적인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상태에 따라 유연하게 적응하는 생리적 센터라 할 수 있다.


심장 전도계의 흐름 – 박동의 여정

 동방결절에서 시작된 전기 신호는 심방을 따라 빠르게 퍼져 양심방을 수축시킨다. 이후 신호는 방실결절(AV Node)을 거치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는 일부러 전기 신호의 전도를 지연시켜 심방과 심실이 동시에 수축하지 않도록 만든다. 이 지연은 효율적인 혈류 흐름을 위한 중요한 조절 장치다.

 이후 전기 신호는 히스 속(His bundle)을 거쳐 좌우 방실 다발(bundle branches)로 나뉘고, 이어서 푸르킨예 섬유(Purkinje fibers)를 통해 심실 근육 전체로 퍼진다. 이 전도계 전체가 잘 작동해야 심실 수축이 동기화되어 강력한 펌핑 작용을 할 수 있다. 전기 신호가 어긋나면, 심실세동(Ventricular fibrillation) 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부정맥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전기 전도계는 완전히 세포 간의 이온 흐름과 연결 구조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터칼레이트 디스크(intercalated disc)와 갭 정션(gap junction)은 세포 간 빠른 신호 전달을 가능하게 하고, 이는 곧 심장의 박동 리듬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심장은 전기적 시스템을 근간으로 삼은 정밀한 펌프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심장의 전기적 박동은 심전도(ECG)에서도 확인 가능하며, P파, QRS 복합체, T파로 구성된 전기적 파형은 모두 동방결절에서 시작된 신호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를 통해 임상에서는 심장 리듬의 이상 여부, 심장 내 전도 장애, 박동기 세포 기능 이상 등을 진단할 수 있다.


동방결절의 임상적 중요성과 인공 박동기

 동방결절이 정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심장은 박동을 잃고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대표적인 질환이 동방결절 기능장애(Sick Sinus Syndrome)이다. 이 경우 심박수가 지나치게 느려지거나 불규칙해지며, 환자는 어지럼증, 실신, 피로감 등을 호소하게 된다. 이런 경우 인체는 보조 박동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공 장치, 즉 인공 박동기(pacemaker)를 필요로 한다.

 인공 박동기는 심장에 전극을 삽입하여 전기 신호를 인위적으로 생성하고, 이를 심장 근육에 전달함으로써 일정한 박동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최신 박동기는 동방결절의 전기생리학적 원리를 모방해, 신체 활동량에 따라 박동수를 자동 조절할 수 있다. 즉, 사용자가 운동을 하면 박동수를 증가시키고, 안정 시에는 감소시키는 ‘반응형 박동기(rate-responsive pacemaker)’ 기술이 적용된다.

한편, 미래의 심장 치료는 더욱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물학적 박동기(biological pacemaker) 개발이 활발하다. 이는 일반 심근세포에 HCN 유전자를 도입하거나, 줄기세포를 활용하여 동방결절과 유사한 기능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인공 장치가 아닌, 세포 수준에서 자율적으로 박동을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동방결절은 작지만 인체 생존에 절대적인 구조다. 심장 전기생리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작은 조직은, 현대 의학이 심장 리듬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심장의 박동은 곧 동방결절의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