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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장내 미생물과 정신 건강의 연결 고리: '제2의 뇌' 이론

장은 왜 '제2의 뇌'로 불리는가?

 최근 수년간 장과 정신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장은 단순한 소화기관을 넘어 ‘제2의 뇌(the second brain)’로 불리고 있다. 이 용어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의 신경생리학자인 Michael D. Gershon 박사가 그의 저서 『The Second Brain』(1998)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장 내 신경망이 자율적으로 작동하며 신경전달물질을 생산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인간의 장에는 약 1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가 존재하며, 이는 척수보다 많은 양이다. 이 장 신경계는 ‘장 신경총(enteric nervous system, ENS)’이라 불리며, 뇌와는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또한, 세로토닌(serotonin)의 약 90% 이상이 장에서 생산된다는 점은 장의 신경학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세로토닌은 우울증 및 불안과 깊은 연관이 있는 신경전달물질로 잘 알려져 있다.

《Nature Reviews Neuroscience》(2015)에 게재된 리뷰 논문에서는 장내 미생물과 신경계 간의 복합적인 상호작용, 즉 장-뇌 축(gut-brain axis)에 대해 설명하면서, 장내 환경이 감정, 스트레스 반응, 인지기능에 미치는 영향이 명확히 관찰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러한 연구는 정신과적 증상을 단순히 뇌 기능의 이상으로 보기보다는, 장내 생태계의 이상까지 고려해야 하는 통합적 접근법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과 정신 건강 문제

 장내에는 약 1,000여 종, 100조 개 이상의 미생물이 존재하며, 이들은 소화기 기능은 물론, 면역계, 내분비계, 심지어는 중추신경계까지 영향을 준다. 이 장내 미생물 군집을 총칭하여 장내 마이크로바이옴(gut microbiome)이라 하며, 미생물 군집의 다양성과 균형이 깨지면 다양한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장내 세균의 불균형(dysbiosis)은 우울증, 불안장애,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치매 등 여러 신경정신질환과 연관이 있음이 다수의 연구에서 보고되었다. 《Psychiatry Research》(2020)에서는 우울증 환자와 건강한 대조군의 장내 미생물 구성을 비교한 연구에서, Faecalibacterium, Coprococcus와 같은 항염성 균주가 우울증 환자에게서 유의하게 감소하였음을 밝혔다. 이는 장내 염증 반응이 뇌 염증을 유발하여 정신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염증성 우울증 이론’을 지지한다.

 또한, 《Nature Microbiology》(2019)에서는 건강한 실험쥐의 장내 미생물을 항생제로 제거하고 특정 정신질환 환자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한 결과, 해당 쥐들이 불안 행동과 인지 저하를 보였으며, 이는 장내 미생물이 뇌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같이, 장내 미생물의 상태는 단순한 소화 건강을 넘어서 심리적 안정과 정서 조절에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이는 정신건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장-뇌 축(Gut-Brain Axis)의 생리학적 연결 구조

 장과 뇌는 어떻게 소통하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복합적인 생리학적 경로에 있다. 장-뇌 축은 신경 경로, 내분비 경로, 면역 경로를 통해 양방향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구조이며, 각 경로는 정신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신경 경로: 가장 중요한 통로는 미주신경(Vagus nerve)이다. 이 신경은 장에서 수집한 정보를 뇌간(brainstem)으로 전달하며, 장내 염증, 미생물 대사산물, 장 운동성 등에 따른 뇌 반응을 유도한다. 《Journal of Neural Transmission》(2021)에서는 미주신경이 절제된 실험쥐에서 프로바이오틱스 섭취 후에도 정신 개선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음을 보고하여, 미주신경이 장-뇌 상호작용의 필수 요소임을 입증했다.
  • 내분비 경로: 장내 세균은 단쇄지방산(short-chain fatty acids, SCFAs)도파민, 세로토닌, GABA와 같은 신경활성 물질을 생산하거나 그 생산을 조절한다. 이러한 물질은 혈관을 통해 중추신경계로 이동하여 감정과 인지에 영향을 미친다.
  • 면역 경로: 장은 면역세포의 70% 이상이 존재하는 면역기관이다. 장 내 세균의 변화는 면역 반응을 통해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분비하게 만들고, 이러한 염증 물질은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하여 신경염증 및 신경세포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이는 우울증과 치매 등에서 염증성 바이오마커가 높게 나타나는 현상과도 연결된다.

 이처럼, 장-뇌 축은 다양한 생리학적 시스템의 융합된 통신 경로이며, 장내 환경의 변화는 곧바로 뇌 기능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장내 환경을 조절하여 정신 건강을 향상하는 방법

장 내 미생물과 정신 건강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확립되면서, 정신과 치료에도 장내 환경 조절을 포함하려는 통합의학적 접근법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있다.

✅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와 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

《Frontiers in Psychiatry》(2021)에 실린 임상연구에 따르면,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 helveticus)와 비피도박테리움(Bifidobacterium longum) 혼합 프로바이오틱스를 30일간 복용한 결과, 불안 및 우울 점수가 유의하게 감소하였다. 이는 심리 프로바이오틱스(psychobiotics) 개념의 기반이 되는 결과로, 장내 세균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것이 뇌 기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실험적 증거이다.

✅ 고섬유소 식단과 발효 식품

식이섬유는 프리바이오틱스 역할을 하며, 유익균의 성장을 도와 장내 균형을 회복시킨다. 김치, 요구르트, 된장 등 전통 발효 식품에는 천연 유산균이 풍부하며, 장내 다양성을 증진시킨다. 이는 특히 한국형 식단이 서구식 식단에 비해 정신건강에 유리할 수 있는 기초적 설명이 되기도 한다.

✅ 스트레스 관리와 수면

만성 스트레스는 코르티솔 수치를 높이고 장점막 투과성을 증가시켜 ‘누수 장 증후군(leaky gut)’을 유발, 장내장 내 염증과 미생물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명상, 규칙적인 운동, 양질의 수면은 장 내 마이크로바이옴을 안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 항생제 남용 주의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은 유익균까지 사멸시켜 장내 균형을 붕괴시킨다. 《Nature》(2016)에 따르면, 광범위 항생제 복용 후 장내 미생물 군집 회복에는 최대 6개월 이상이 걸릴 수 있으며, 일부는 영구적으로 소실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항생제는 반드시 의사의 처방 하에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을 돌보는 것이 곧 정신 건강을 지키는 길

 장과 뇌는 서로 떨어진 기관처럼 보이지만, 생리적·신경학적·면역학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용한다. '제2의 뇌'인 장은 정신적 안정과 인지 기능을 조절하는 핵심 기지로서, 장내 환경의 질이 곧 우리의 정서적 삶의 질을 결정할 수 있다.

 앞으로 정신 건강을 논함에 있어,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뿐 아니라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과 균형 상태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올바른 식습관, 프로바이오틱스 섭취, 스트레스 관리 등 일상 속 장내 환경을 개선하는 작은 습관들이 우리의 기분, 감정, 사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장(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곧 뇌(腦)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실천 가능한 방법임을 기억하자. 정신건강은 ‘생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화의 문제’ 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