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건강한 음식이 당신을 병들게 한다: 항영양소의 이중성

news-81 2025. 7. 23. 11:04

슈퍼푸드의 그림자, ‘항영양소’라는 함정

"케일, 귀리, 렌틸콩… 이 건강한 음식들이 나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고요?"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식품들이 있다.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다고 알려진 시금치, 단백질 함량이 높은 두부, 혈당을 안정시켜 준다는 귀리. 하지만 이 슈퍼푸드들 안에는 '항영양소(anti-nutrients)'라는 낯선 존재가 숨어 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항영양소는 인체의 영양소 흡수를 방해하거나 대사에 간접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이다. 이들은 식물 자신을 포식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진화한 방어 화합물이지만, 현대인의 식단에서는 때로는 만성적인 염증이나 흡수 장애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항영양소에는 피틴산(phytic acid), 렉틴(lectin), 옥살레이트(oxalate), 사포닌(saponin), 탄닌(tannin) 등이 있다. 이들은 철분, 아연, 칼슘 등의 흡수를 방해하거나 장내 점막을 자극해 흡수력을 저해한다. 2020년 Journal of Food Science and Technology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렌틸콩과 같은 콩류를 생으로 섭취할 경우 렉틴이 장점막을 손상시켜 장누수(leaky gut)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으며, 이는 만성 피로, 피부 트러블, 면역 반응 이상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음식들이 ‘건강식’이라는 명목 아래 대량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피틴산과 미네랄 결핍: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

곡류와 콩류는 피틴산의 주요 공급원이다. 피틴산은 식물이 인을 저장하는 형태로 존재하지만, 사람의 소화기관은 이를 분해하는 피타아제(phytase) 효소가 거의 없어 미네랄과 결합된 형태로 배출된다. 이 때문에 피틴산은 철분, 아연, 마그네슘, 칼슘 등의 흡수를 저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채식주의자나 곡류 위주의 식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피틴산 섭취가 만성 결핍을 유발할 수 있다.

2019년 The 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에서는 인도 여성 대상의 대규모 조사 결과, 철분 결핍성 빈혈의 가장 강력한 예측인자가 '피틴산 섭취량'이었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비타민과 미네랄 보충제를 복용하고 있었음에도 혈중 철 수치가 개선되지 않았다. 이는 피틴산이 철분과 강하게 결합해 장에서 흡수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성장기 아동, 임산부, 노인층에서 이러한 영향은 더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또한 피틴산은 뼈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칼슘이 체내에서 제대로 흡수되지 않으면 골밀도가 낮아질 수 있으며, 이는 골다공증의 위험 요인이 된다. 결국, 건강을 위해 먹는 귀리죽이나 미숫가루가 장기적으로는 체내 영양소 불균형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항영양소의 또 다른 얼굴: 독인가 약인가?

하지만 항영양소가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이중성(dual nature)이라는 단어가 붙는 이유는, 이들 화합물이 조건에 따라 건강에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피틴산은 강력한 항산화제로 작용하며, 금속 이온에 결합해 유해한 자유라디칼 생성을 억제한다. 2021년 Critical Reviews in Food Science and Nutrition에서는 피틴산이 대장암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세포 내 신호 전달 경로에 간섭해 항암 작용을 나타낼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렉틴 역시 특정 바이러스나 병원성 박테리아에 대한 방어 기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탄닌은 항균, 항바이러스 효과를 가지고 있으며, 폴리페놀로 작용하여 심혈관계 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항영양소를 제거한 가공 식품이 항상 더 건강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섭취량, 가공 방식, 개인의 장 건강 상태에 따라 그 영향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또한 현대 영양학에서는 "적당한 스트레스(hormesis)"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소량의 자극이 오히려 생체 방어 능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항영양소는 이런 호르메시스 작용의 일부로 간주되기도 하며,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회피보다는 균형 잡힌 식단과 가공 방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항영양소와 건강의 균형점: 어떻게 먹어야 할까?

항영양소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해롭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문제는 과량 섭취와 잘못된 가공 방식이다. 항영양소 함량을 줄이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는 발효, 불림, 싹틔우기(sprouting), 끓이기 등의 전통적인 조리법이 있다. 예를 들어, 발효된 콩인 된장, 청국장 등은 렉틴과 피틴산 함량이 크게 줄어든다. 통밀이나 귀리를 하룻밤 불려 조리하면 피틴산이 상당 부분 분해되며, 영양소 흡수도 향상된다.

또한, 개인의 장 건강영양 상태에 따라 항영양소의 영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장점막이 튼튼하고 장내 미생물 다양성이 높은 사람은 항영양소의 부작용을 덜 겪는다. 반면, 장누수 증후군이나 크론병, 철분 결핍 등을 앓고 있는 사람은 항영양소에 민감할 수 있다. 따라서 본인의 상태에 맞는 식이 조절이 필요하며, 단순히 ‘좋다고 알려진 음식’을 무작정 따르기보다는 식품의 생리학적 특성과 내 몸의 상태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식단이 오히려 내 몸을 공격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항영양소는 ‘적’ 일 수도 있고, ‘보호자’ 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정보와 이해, 그리고 식생활의 지혜가 건강을 만드는 첫걸음이 된다.

 

항영양소를 줄이는 건강한 식단 예시 및 조리 팁


귀리 (오트밀) 피틴산 6~12시간 물에 불린 후 조리 오버나이트 오트
귀리 + 요거트 + 과일
불리면 피틴산 분해↑, 흡수율↑
병아리콩 · 렌틸콩 렉틴, 사포닌 12시간 이상 불린 뒤 끓이기 / 발아 병아리콩 커리
올리브유, 마늘, 커민 활용
발아 시 비타민 C 증가, 렉틴↓
시금치 옥살레이트 살짝 데치기 (30초~1분) 시금치나물무침
참기름, 마늘, 깨소금
데치면 옥살레이트 30~50%↓
두부 · 콩 피틴산, 렉틴 발효식품 섭취 (된장, 청국장) 된장국 + 청국장 비빔밥 발효 시 항영양소 분해효소 활성↑
통밀빵 · 현미 피틴산, 탄닌 천연 발효 또는 발아 현미로 섭취 발아현미밥 + 된장국
or 천연 발효 사워도우
발효과정에서 피틴산 분해 활발
차잎 (홍차, 녹차) 탄닌 식사 직후 섭취 피하기 ▶ 티타임은 식후 1시간 후 탄닌은 철 흡수 방해 → 공복 시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