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건강검진 수치의 함정

news-81 2025. 7. 14. 11:04

정상 수치의 ‘착시 효과’ – 숫자는 진실을 모두 말하지 않는다

  “검진 결과 정상 이래서 다행이야.” 건강검진을 받고 돌아온 직장인의 말이다. 숫자는 분명 ‘정상’이었다. 그러나 6개월 후 그는 고혈압 진단을 받고, 그로부터 1년 뒤에는 당뇨병까지 앓게 되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정상 범위라는 숫자의 틀에 안심한 채, 진짜 문제를 놓치고 있다.

 건강검진에서 제공하는 ‘정상 범위’는 대부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일반 인구의 평균값을 기반으로 설정된다. 즉, 평균 ± 2표준편차 범위에 속하는 수치를 ‘정상’이라 정의하지만, 이 범위는 반드시 개인의 건강 상태를 대표하거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공복혈당이 99mg/dL이면 ‘정상’이지만, 이는 이미 인슐린 저항성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Framingham Heart Study에 따르면, 혈당이 9599mg/dL 범위인 사람은 85mg 이하인 사람에 비해 제2형 당뇨병 발생 위험이 2배 이상 증가한다는 결과가 있다 (Meigs et al., 2004). 또한 LDL 콜레스테롤이 130mg/dL 수준일 경우, 고혈압이나 흡연, 가족력 등의 위험 인자가 함께 존재한다면 심혈관질환 발생률이 일반인에 비해 23배까지 높아질 수 있다.

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정상’이라는 말에 안심하기보다, 정상 범위 안에서도 수치의 위치, 경향성, 개인의 병력과 동반 위험요소까지 함께 분석해야 실질적인 건강 위험을 파악할 수 있다.


정상에 가까운 이상 수치 – 병태생리학이 알려주는 경계지점

  우리가 놓치기 쉬운 건강검진 수치는 정상 범위의 끝자락에 있는 수치들이다. 병태생리학적으로 볼 때, 신체는 질병으로 진단되기 전에도 이미 미세한 기능 이상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공복혈당이 90~99mg/dL 사이일 경우, 췌장은 이미 인슐린을 과분비하거나 인슐린 저항성을 극복하기 위해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Robbins Basic Pathology』에서는 당뇨병으로 이행하기 전 단계에서 췌도 β세포의 기능 저하와 인슐린 민감도 감소가 동반되며, 이는 수년간 점진적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간수치(AST/ALT)가 ‘정상 상한선 근처’일 경우에도, 이는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지방간,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FLD)의 초기 징후일 수 있다.

 특히 ALT 수치가 30~40 U/L 범위에 있는 경우, 정상 상한치(남성 기준 40 U/L)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간 조직의 지방 침착이나 미세 염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연구가 반복적으로 보고되었다 (Prati et al., 2002). 실제로 간초음파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정상 수치’의 ALT를 보유하고 있었던 사실은, 수치 자체보다 변화 양상과 동반 지표 해석이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또한 ‘경계 고혈압(Prehypertension)’ 범위인 수축기 혈압 120~139mmHg, 이완기 혈압 80~89mmHg는 단기적으로는 정상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심장과 혈관에 지속적인 기계적 스트레스를 가하여 좌심실 비대, 심부전 등의 위험을 높인다.

요컨대, 정상이라는 프레임 안에서도 숫자의 미묘한 이동이 신체 내에서 얼마나 깊은 병리적 변화를 의미할 수 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수치만 볼 것인가, 경향을 볼 것인가 – 동적 관찰의 중요성

 건강검진 수치는 단순히 한 시점의 정보를 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질병은 동적이고 누적적인 경향을 가진다. 즉, ‘정상’이라는 고정값보다는 수치의 변화 방향과 속도가 더욱 중요한 진단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3년 전부터 공복혈당이 86 → 92 → 97mg/dL로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면, 이는 ‘정상’이라는 범위 안에 있다고 해도 당 대사 기능이 점진적으로 악화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른바 subclinical disease 또는 pre-disease state라 불리는 이 단계는 전임상기이지만, 병태생리학적으로는 이미 조직 단위의 대사 이상, 미세 염증, 세포 스트레스 등이 시작된 상태다.

 혈중 크레아티닌 수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수치가 0.9mg/dL에서 1.1mg/dL로 소폭 상승했더라도, 기저 신기능이 낮거나 나이, 체중, 근육량이 적은 경우에는 이는 상당한 신장 기능 저하를 의미할 수 있다. 『Brenner & Rector’s The Kidney』에서는 크레아티닌 수치가 정상이더라도 사구체 여과율(GFR)이 낮아져 있을 수 있으므로, 단일 수치보다 추세와 환자 특성을 함께 보라고 권고한다.

 즉, 건강검진은 ‘정상/이상’이라는 이분법보다, 장기적인 추세(트렌드)의 정량적 비교와 위험인자 병합 해석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평범해 보이는 수치 안에서도 위험의 전조를 조기에 포착할 수 있다.


숫자 이면의 맥락을 읽는 법 – 개인화된 건강 판단 기준

 건강검진 수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 해석이 필요한 참조 정보다. 동일한 수치라도 개인의 나이, 성별, 체중, 식습관, 기저질환 유무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65세 여성에서의 빈혈 수치와 25세 남성의 동일 수치는 임상적 의미가 완전히 다르며, 철 결핍 여부도 상이하게 판단해야 한다.

 또한 지질 수치(HDL, LDL, TG 등) 역시 마찬가지다. LDL이 120mg/dL이라고 해도, 가족력이 있는 환자에겐 고위험군이며, HDL이 낮고 중성지방이 높다면 동맥경화 지수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 특히 대사증후군을 구성하는 수치들은 하나하나 단독으로 보면 ‘정상’ 일 수 있지만, 복합적으로 분석하면 질병 진단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개인 맞춤형 검진 해석(Personalized Lab Interpretation)이 도입되고 있다. 이는 수치를 단순히 정해진 범위 내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유전, 생활습관, 과거력, 장기별 민감도까지 반영하여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비로소 건강검진은 ‘발견의 도구’가 아닌 예방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의사와의 해석 상담 또한 중요하다. 수치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검사를 추가할지, 어떤 생활습관을 교정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 없이 수치만 받는 검진은 결국 ‘건강 착각’을 낳을 수 있다.


 건강검진 결과표에 적힌 ‘정상’이라는 단어는 때로는 가장 위험한 위안이 될 수 있다. 숫자는 단순한 가이드일 뿐, 그 안에 담긴 병태생리학적 변화와 개인의 맥락을 읽지 못하면 진짜 건강은 놓칠 수 있다.

진정한 건강 관리는 정상 수치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사전에 대응하는 것이다. 수치는 고정값이 아니라 경향의 신호이며, 검진은 종결이 아닌 출발점이다. 이제는 숫자만 보지 말자. 수치의 움직임, 맥락, 개인의 생리적 배경을 함께 읽는 것이 당신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