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강

혈관은 왜 새는가 – 모세혈관 누수 증후군이란?

"붓고, 저리고, 쓰러진다" – 들리지 않는 치명적 신호

 한 건강한 30대 남성이 갑작스러운 전신 부종과 저혈압, 호흡곤란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혈액검사에서는 백혈구 수치가 정상이었고, 심전도에서도 명확한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체내 혈액이 점점 희석되며, 신장은 소변 배출을 멈췄고, 말초는 얼음장처럼 식어갔다. 결국 그는 중환자실에서 강력한 수액과 승압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진단명은 생소한 모세혈관 누수 증후군(Capillary Leak Syndrome, CLS)이었다.

 CLS는 일반적인 부종이나 쇼크와 달리, 혈관이 터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혈액 속 성분이 혈관 밖으로 대량 유출되는 희귀하지만 치명적인 상태다. 이로 인해 혈액 속의 단백질, 수분, 심지어는 백혈구까지 조직 사이로 빠져나가며, 혈액은 진짜 '마르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부종이 아니라, 혈액 농축(hemoconcentration), 저알부민혈증, 저혈압을 동시에 초래하며, 치료 시기를 놓치면 급성 신부전, 폐부종,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급 상태다.

 문제는 이 증후군이 자가면역 반응, 감염, 항암제, 백신 등 다양한 자극에 의해 유발될 수 있으며, 초기에는 일반적인 탈수, 감염 또는 아나필락시스와 유사한 증상을 보여 오진되기 쉽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면역항암제나 SARS-CoV-2 백신 이후 CLS가 보고되면서 학계에서도 그 기전과 위험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Bonilla-Felix et al., 2021).


기전의 핵심 – 혈관내피세포의 붕괴와 염증 신호의 폭주

 모세혈관 누수 증후군의 중심에는 바로 혈관내피세포(endothelial cells)의 기능 장애가 있다. 우리 몸의 모든 모세혈관은 단일층의 내피세포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는 혈액과 조직 사이를 나누는 생물학적 장벽 역할을 한다. 정상 상태에서는 물, 전해질, 소량의 작은 분자만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키지만, CLS에서는 이 내피 장벽이 일시적으로 붕괴되며 대량의 혈장과 단백질, 심지어 세포 수준의 성분까지 조직 간 공간으로 유출된다.

 이러한 내피 장벽의 붕괴는 주로 염증성 사이토카인(cytokine)의 과도한 분비에 의해 유도된다. 대표적으로 인터루킨-2(IL-2), 인터페론-감마(IFN-γ), 종양괴사인자-알파(TNF-α) 등이 내피세포의 세포 간 이음(tight junction)을 약화시키고, 세포 내 actin skeleton을 재배열시켜 세포 간격을 벌린다. 이는 결국 혈관의 투과성(permeability)을 병리학적으로 증가시키는 주요 기전이다(Gousseff et al., 2011).

 또한, 최근 연구에서는 혈관 내피세포에 존재하는 VE-cadherin, claudin-5, occludin 등의 단백질 발현이 급격히 감소하는 것이 CLS 환자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고 보고되었다(Yamazaki et al., 2020). 이는 단순한 염증 반응이 아닌, 혈관 내피세포의 구조적 붕괴가 핵심 병인임을 시사한다.

 한편 일부 환자에서는 혈관내피성장인자(VEGF)의 과발현도 CLS 유발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VEGF는 원래 조직재생과 혈관신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과도하게 분비되면 혈관투과성을 병적으로 증가시켜 CLS를 유도할 수 있다(Druey & Greipp, 2010). 실제로 IL-2 면역치료를 받던 암환자에서 VEGF 수치가 급증하며 CLS가 유발된 사례들이 보고된 바 있다.


이것은 희귀병이 아니다 – 약물, 감염, 자가면역과의 연결고리

 CLS는 '희귀 질환'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임상에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유사한 병태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유형은 전격성 모세혈관 누수 증후군(Systemic Capillary Leak Syndrome, SCLS)으로, 드물지만 갑작스럽게 진행되며 사망률이 높다. 하지만 이 외에도, 패혈증, 혈관염, 화상, 심한 알레르기 반응, CAR-T 세포치료 등에서도 CLS가 나타난다.

 특히 면역항암제나 IL-2 치료를 받는 환자에서 치료 2~3일 내 CLS가 발생할 수 있음이 보고되며, 이는 치료 종료 시까지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Kaplan et al., 2020). 또한 최근 mRNA 백신 접종 이후 CLS 발생 사례가 보고되면서, 백신의 면역 자극이 특정 환자에서 과도한 사이토카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음이 주목받았다(European Medicines Agency, 2021).

 CLS는 자가면역질환과도 깊은 연관을 가진다. 전신홍반루푸스(SLE), 전신경화증, 쇼그렌증후군, 다발성 근염 등의 환자에서 자가항체가 혈관내피를 공격하면서 누수 현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다. 자가항체 외에도 T세포의 활성화, 보체계의 활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혈관내피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부 보고에 따르면, 단백요증을 동반한 신증후군 환자에서 CLS-like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는 사구체 필터의 손상과 함께 전신 혈관투과성 증가가 연계되어 발생하는 병태로 해석된다(Kumar et al., 2019). 결국 CLS는 단일질환이 아니라, 여러 면역 및 염증성 질환의 공통 말단 병태로 작용할 수 있는 일종의 병리적 반응 패턴이다.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 – 조기 인식과 위험 환자 선별

 CLS의 치료는 기전적 치료보다는 대증적 치료(supportive care)에 집중된다. 가장 기본은 고용량 수액 공급을 통한 순환혈량 유지, 승압제 투여, 그리고 혈장 내 단백질 보충(알부민 제제 투여)이다. 하지만 과도한 수액은 조직 간 공간에 고스란히 누적되어 폐부종이나 심낭삼출로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정밀한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약물치료로는 스테로이드, 항히스타민제, 면역억제제 등이 사용되며, 재발성 CLS의 예방에는 테오필린(theophylline)과 테르부탈린(terbutaline) 병용 요법이 일정 효과를 보였다는 보고도 있다(Druey & Parikh, 2017). 또한 최근에는 IL-2 경로 차단제, VEGF 억제제(예: bevacizumab) 등을 이용한 표적 치료의 가능성도 연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LS는 진단이 늦을수록 예후가 급격히 나빠지는 질환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위험 환자군—예컨대 면역치료 중인 환자, 자가면역질환 환자, 감염 후 급성 염증반응을 경험한 환자 등—에서 이 질환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특히 병원 현장에서는 혈액 농축(헤마토크릿 증가), 알부민 저하, 혈압 저하가 동반된 환자에서 CLS 가능성을 즉시 고려해야 한다.

 CLS는 단지 ‘혈관이 샌다’는 것이 아니라, 면역과 염증 반응이 통제 불가능해질 때 우리 몸이 보이는 궁극적 붕괴의 형태일 수 있다. 조기 대응과 기전 이해가 중요한 이유다. 이 보이지 않는 침묵의 증후군은 단지 희귀병이 아니라, 현대의학이 여전히 명확히 해석하지 못한 면역 과잉반응의 거울인지도 모른다.